A Book, 증보문헌비고



얼마전, <증보문헌비고>의 상위고편을 읽었는데 참 좋은책인것같아 그 책의 해제에 대해서 간략하게 소개하고 싶어서 이렇게 글을 쓰게되었다. - 국역 증보문헌비고, 1980, 새종대왕기념사업회 발간, 유경로, 이은성
<증보문헌비고>는 우리나라 문화를 상위, 여지, 제계, 예, 악, 병, 형, 전부, 재용, 호구, 시적, 교빙, 선거, 학교, 직관, 예문등 16고로 나누어 각종 서적에 나타나 있는 해당사항을 초출하여 연대순으로 정리한것으로 일종의 백과사전과 같은 분류사를 합친것으로 국가행정과 일상생활에 참고가 되는 동시에 학문 연구에도 필요한것이다.

처음에 영조는 중종때 <신증동국여지승람>을 편찬한 이후 지리지를 편찬하지 아니하였으므로 <강역지>를 편찬할 예정이었으나, 뒤에 마단림의 <문헌통고>를 보고, 우리나라 문화도 이 예에 의하여 분류 편찬할것을 결심하고 -문헌비고-의 찬을 명령하는 한편 빨리 편찬하도록 당상과 낭청을 독려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사업은 단시간내에 이룰수없는것이기에 '찬집청' 당상 김응순은 2,3년의 시일을 두고 자료를 심사 선택한후에 편찬할것을 제의하고 또 어떤이는 사업이 작사도방(길가에 집을짓는것)하는 같아서 성공할수 없다고 하였지만 영조는 단호히 배격하고 또 빨리 성취하기 위해 정월 23일부터는 '찬집청'의 낭청은 집에도 가지말고 숙직을 하면서 주야로 겸행하게하였다. 이때 영조는 이사업을 3백년 유래 초유의 대사업이라 하였다. 어쨌던 영조는 그당시 77세의 고령이었기에 생전에 사업을 완성하기위해 편찬을 독려하고 편찬된부분이 있으면 궐내로 불여들여 읽게하였다.

이리하여 <동국문헌비고>는 아홉달만에 13고의 40편이 완성되었으며, <승정원일기>에 의하면, 서호수에 의해 상위고(천문관련), 신경준에의해 여지고(지리관련)등이 완성되었다. 그러나 일이 서둘러서 집필되고 또 여러사람들이 분담하였기에 체제도 다르고 있는 자료도 다 초출하지 못하였고 오류도 많아서 불완전한것이었다.

그래서 정조시대에는 이를 증정하였는데 이번에는 찬집청을 설치하지 않고 또한 기간도 정하지 아니하고서 이만운(이 사람에 대해서는 알려진것이 거의 없음)이란 학자 한사람에 맡겨 자기 집에서 사자관을 데리고 보수하게하였다. <승정원일기> 정조 7년 9월9일조에 정조가 이만운을 인견하고 -문헌비고- 보수에 필요한 서적을 문의할때, 이만운이 대답하기를,

신이 본 서적은 1천1백여권이 되나 아직 보아야 할 문집이 3,4백권과 각사 등록 1백여권이 있으며, 또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고려사>는 항상 좌우에 놓고 보아야하겠습니다.

하였고, 또 문헌비고가 보수된뒤 정조는 좌의정 김종수, 우의정 채 제공 (얼마전 이분의 초상화로 만든 엽서를 대영박물관 shop에서 보게되었다. 역시나 한국관에는 걸려있지 않았고 관리분이 일러준 바에의하면 지금 불화가 걸린자리에 있었다고한다.)에게 교열을 명하자 두 대신이 이르기를

이만운의 박학다식한 것은 당세에 비할 사람이 없는데 그가 편찬한 것을 신등이 어찌 감히 논의하겠습니까

하고 사양하였다고 한다. 9년에 걸친 <동국문헌비고>의 잘못된부분을 정정하고 영조이후의 사실을 추가하여 일단의 초고를 완성하였는데 책의 이름을 <증정문헌비고>라하고였는데 총 2백 46권 66책으로 전에 비하여 7소를 증설한것이었다. 정조 20년(1796)에 규장각 대교 서유구로 하여금 <일성록>에 있는 사실을 초출하여 이만운에게 주어 보편하게 하였는데 이듬해 이만운이 사망함으로 말미암아 중지되었다.

순조 7년(1807)에 각신 심상규가 건의하여 이만운의 아들 이유준으로 하여금 이를 교정하게 하고 필요한 경비를 지급하여다. 왕명을 받은 이유준은 자기 집에서 2,3인의 동문과 함께 자기 아버지가 편찬한 <증정문헌비고>중 부전을 붙인것과 차기한것들을 모아서 규장각을 왕래하며 질정하고 또 궁중에서 잃어버린 학교고를 새로 편찬하여 순조9년(1809)에 완성하였다.

대한제국 말기 광무7년(1903) 2월 24일 법무국장 김석규가 상소하여 문헌비고를 편찬한지 1백년이 지났고 또 개항후 정치, 사회, 경제, 문화 각방면에 변화가 많았으므로 증보할것을 건의하여 고종은 홍문관에 문헌비고집찬소를 설치하여 고 광무14년(1907) 12월 12일에 <증보문헌비고> 16고 2백50권을 편찬하여 융희2년 (1908) 7월1일에 인쇄를 완료하여 50책으로 장정하여 임금에게 바쳤다. 이것이 오늘날 전하는 <증보문헌비고>이다.

상위고만 설명하자면, 12권으로 전반 8권은 우리나라 천문학에 관한 역사적 사실들을 기록한것으로 천문학 연구의 연혁과 천지, 칠정, 항성의 황적경위표, 황적수도, 북극고도, 동서편도, 각종천문관측기, 측우, 누각, 일월식 추산법, 기타 객성,혜성, 천문, 성변, 운기등 영조때 서기수가 편찬한것이요, 후반4권은 정조때 이만운이 편찬한 물이고로서 우리나라 역사상에 나타난 각종 천재지변과 산수, 한재, 충재, 여역, 화재,사람, 초목 금수에 이르러기까지 각종 이변을 기록한것이다.

-왜 상위고(천문관련)가 첫머리인가?
.....지금 문헌통고의 목록을 보니 전제,전부가 첫머리가 되었는데 이는 토지가 있은 뒤에야 국가가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서명에서는 '건'은 아비이고 '곤'은 어미라 일컬었으니 이것으로 미루어본다면 상위고, 여지고를 마땅히 먼저하여야하고, 종묘는....이번 문헌비고에는 상위고를 첫머리로하고 여지고를 둘째로 하고 예고와 악고를..... (영조조 어제 동국문헌비고 서(preface) 중에서)

-아니 이사람도?
정 1품 보국 숭록대부 태자소사 태훈 내각 총리대신 신 이완용은 칙명을 받들어 삼가쓴다. (어제 증보문헌비고 후서 중에서)

-<한국과학기술사, 3ed 전상운, 1983> 서문 중에서
...<증보문헌비고>의 그 새까만 한문을 대했을땐 눈앞이 캄캄했다. 한문이라는 또 하나의 벽에 부딪힌것이다. 사전과 씨름하고 한문에 밝은 분들에게 배워가며 수없이 거듭 읽어 조금씩 터득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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